▶◀ 謹弔(근조)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덕수궁 분향소, 서울역 분향소에 다녀와서..

2009. 5. 29. 17:49잡다한 이야기들/여기저기 떠도는 여행이야기

필자의 블로그는 정치적 성향을 전혀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가장 이슈화되는 前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포스팅은 하지 않았지만.
늦게 후회하기 전에 영결식은 못 가더라도 분향소는 들려야 겠다고 결심하고 5월 28일 분향소에 다녀왔다.

필자의 정치적 성향을 약간 언급하자면,
노무현 지지파도 아닐뿐더라 이명박 지지자도 아니되, 그렇다고 어정쩡한 회색분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능하면 현재 직분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믿어 주고, 이해해 주려는 서민이랄까?

물론 지난 재임기간 5년 동안 전 대통령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도 분명 아쉬운 점도 있었고, 좋았다고 생각한 면도 있었다.
이번에 서거하시기 전에 비리사건들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면서도,
정치하려면 저정도 비리는 보통 있지 않은가?, 그래도 지금까지 다른 대통령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가 해놓은 정치, 그의 방식, 그가 추구하려던 것 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재평가 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다지 정치분야에 아주 큰 관심조차 없던 내게 前 대통령님의 서거는 이상하리만큼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 느낌이란 어떤 느낌이냐면, 인터넷의 글을 보거나 신문, 뉴스를 보고 있자니 평소 흘리지 않던 눈물이 눈망울에 맺히고 가슴이 턱하고 막혀왔다.
누군가 따진다면면, 언론의 과장된 포장이니 라고 말 할지라도,
그의 지금까지의 행보, 청렴한 사진들, 높은 위치에서도 낮게보는 시선, 그의 업적이 나의 눈샘을 자극했다.
그리고 보통 일반 사람처럼,
그가 재임당시 그를 지지하지는 못할망정, 그만큼 인정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고
그가 예전에 했던 한결같던 연설들이 말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말라있던 가슴을 자극했다.

비록 비리로 붉어진 사건이 진실여부를 떠나서,
분명한건 그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행보나 정치신념, 시민을 생각하는 자세는 모두 한결같았다.
(누가 그 증거나 자료를 제시하라고 하면 링크를 걸어줄 수 있으나, 워낙 여러 블로그에 자료가 많으니 찾아보길 바란다. 또는 그런 과장된 소문을 믿지 말라고 한다면 필자는 정말 할말이 많아진다.)

그리고 필자가 눈시울을 붉혔던 이유중의 하나는 아래와 같다.
진정 자신의 정의와 사회의 올바른 정의를 지켜가는 사람의 최후가 죽음이라니...
그보다 훨씬 못된 일을 했더라도, 뻔뻔하게 잡아떼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게 현실이고, 마지막이 이렇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었다. 그런 사회가 너무나 미웠다.
언제나 제법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해 왔던 나이지만, 처음으로 빌어먹을 세상에 욕을 해봤다.
마치 예전 1980년대를 배경으로한 소설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말이다.
내 한마디로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혼자 주저리거려보았다.

도대체 왜 죽지말아야 할 사람이 죽고, 살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이 현실이라면 도데체 무엇을 위해 세상을 업고 나아가야하는가.
스스로 이런 정체성 혼란에 빠져 허우덩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前 노무현 대통령님의 연설영상, 그의 사진들, 유언, 유시민씨의 영상 및 편지 들을 보면서 용기를 되찾으며 힘을 내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노무현 같은 사람이 아직 존재하고 살아있고,
그들이 세상을 바꿀 여러 시도를 하기에 아직 우리나라도 존재하는 것이고 세상도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보다 그에 대한 재평가 시점이 너무 빨리 찾아온 것 같아서 너무나 당황스럽고 아쉽다.
확실히 이번일을 계기로 여러 정치인들의 경각심을 일으키고, 정의로웠던 초심을 깨닫고,
그들의 읽어버렸던 정치신념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완전 뒤바뀌게하는 전환점이 되어서 보다 더 강한 나, 우리,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기 바란다.

p.s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결백을 무조건적으로 100% 믿거나 옹호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해놓은 것은 없지만 나이를 먹자니(비록 아직 20대이지만) 현실과 타협이라는 것에 대해 여럿 보거나 마주쳐왔고,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처럼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의 정의를 지키려고 해왔다. 그래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붙어도 그는 오히려 그런 자신을 더 사랑하며 진정 서민을 위해 힘써왔다. 다른 어떤 것들을 제외하더라도, 그가 지금까지의 모든 대통령중에서 가장 서민을 위해 힘써왔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권력과 돈, 힘을 위해 상위 10%를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90%를 위해 싸워왔다. 비록 10%가 말하길 90%가 선동당했다고 할지라도, 그는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 분의 서거는 그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회피하기 위해 선택했다고 하는이도 있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의 기개를 지키기 위해 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진정 사과를 위해서 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세상에서 도망치려는 행동으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필자의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너무나 따뜻한 가슴이었던 그가 갑자기 그립다. 그 분을 내 생에 한번 직접 보지 못한게 한탄스럽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그의 한마디는,
임기가 끝나고 나서 최초로 고향으로 내려가는 대통령이 되면서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저도 이제 시민입니다."
난 그 한마디가 왜 이렇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이런게 진짜 대통령이구나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진작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게 대통령인줄 어렸을떄 알았다면, 나의 꿈도 한때 대통령이었을지도 모른다.

포스팅을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 방송이 나온다.
"이제 우리가 강해져야 해요. 그 분은 보내드리고....."
그래, 적어도 그분의 정의는 우리에게 심어졌고, 세상은 조금이라도 바뀔 것이다.
그의 선택이, 그의 인생이 헛되지 않도록 말이다.


1. 덕수궁 대한문


종로에 있다가 시청쪽으로 걸어갔다. 시청역에는 경찰들이 시청광장쪽으로 나가는 길을 아예막고 있었고, 차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서 꽤나 보기 않좋았다. "누구는 아늑하다고 합니다." 라는 발언이 상당히 어이없게 느껴졌다.
위 사진들은 시청역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부근에 적힌 무수히 많은 쪽지들이다.


무더운 날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원봉사하는 분들도 꽤 많았다.
정말 우연히도 자원봉사자들중에 예전 [핸드폰개발과정]에서 같이 공부했던 동생녀석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_^


자극적인 문구가 적힌 글들이 곳곳에 붙혀있었다. 사람들끼리하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불만이 많은 것은 역시 시청광장을 막아 놓은 것이었다. 구석에서 막걸리 한잔 하시며 조금 크게 떠드시는 할아버지들도 계셨다. 그분들도 시청역이나 현 정부의 불만, 추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덕수궁의 대한문에 정식 분향소가 있고, 그 우측에 이렇게 간이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 간이 분향소에서 들렸다가 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전 대통령님께서 즐겨피시던 크라우드 나인도 올려져 있는 모습이다.


모두가 아쉽고 슬픈 표정으로 전 대통령님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필자도 점점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원봉사들이 근조리본과 국화 한송이를 나눠주었다. 이 시간에 봉사활동이나 할껄 하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덕수궁 돌담길에 여러 글들이 붙어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며 자신의 시간을 기다렸다.


학생들이 이시간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슬픈 표정으로 국화한송이 씩을 들고 계신다.


몇몇 눈에 익숙한 의원분들도 계셨다.

 

유언에 있었던 조그만 비석을 만들기 위해 모금을 하고 있었다.
1,000원짜리나 10,000원짜리를 큰맘먹고 넣으려고 했으나 100짜리 동전만 받는다고 한다.
옆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서명을 하고 있었으나, 필자는 서명하지 않았다.

 

잊혀지지 않을 듯한 그분의 미소. 그 분은 사진속에서 웃고 계셨다 ㅠ.ㅜ

 

덕수궁에서 서울역으로 걸어가면서 보이는 시청사진을 한장 찍었다. 버스들도 광장으로의 접근 및 보이지도 않게 막아놓았다.
이때 지나가면서 약간의 몸싸움을 보았는데, 아마도 조중동 기자와 분향소에 계신 사람들과의 말다툼이었을 것이다.
기자는 아무말 없이 욕을 먹으며 자리를 떠났다. 하긴 할말도 없었을 것이다.


2. 서울역 분향소


서울역 분향소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민간에서 운영하는 덕수궁 대한문 앞보다는 조금 거창하고 체계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도 그분은 우리를 향해 웃고 계셨다.
서울역에서는 여러 사람이 들어가서 순서에 맞게 예를 갖추고 상주와 인사를 차례로 나누고 나섰다.


유시민 전 의원님이 눈에 들어왔다. 조문을 하고 악수라도 하며 고생 정말 많으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미 덕수궁에서 하고온 터라 지켜볼 뿐이었다.
너무나 고생많으신 분들, 내 마음이 아파올 뿐이었다.

 

나오면서 상주에게 차례로 인사를 하고 나오시는 분들.
사진을 찍자니, 왠지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실례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더 이상 관련하여 사진을 찍지 않고, 이곳에 조금 머물면서 그분을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있으면 수원에서 화장을 한다고 한다.
오늘 밤을 마지막으로 나에게 맺혀있던 그분을 보내드리고,
스스로도 더 강해져야 겠다.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의 뒤는 우리들이 이어가겠습니다.